■ 들어가며
공공조달 시장에 참여하는 기업에게 부정당업자 입찰참가자격 제한 처분은 사실상 영업 중단에 준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처분이 확정되면 국가·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모든 입찰에 참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처분을 예고받은 기업들은 처분 자체의 당부(當否)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처분의 당부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행정청이 해당 처분을 내릴 수 있는 시간적 권한, 즉 제척기간이 아직 살아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가 직접 수행한 사례를 바탕으로, 부정당업자 입찰참가자격 제한 처분에서 제척기간이 갖는 의미와 실무적 쟁점을 분석합니다.
■ 부정당업자 처분과 제척기간 규정의 도입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지방계약법') 제31조 제1항은 입찰·계약 과정에서 부정한 행위를 한 자에 대하여 2년 이내의 범위에서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래 이 처분에는 제척기간 규정이 없었습니다. 부정당행위가 발생한 후 수년이 지나도 행정청이 언제든지 처분을 내릴 수 있었고, 이는 기업의 법적 지위를 무한정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하는 문제를 야기하였습니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2017년 8월 입법예고를 통해 "입찰 참가자격 제한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하여 부정당업자 위반행위의 종료일로부터 일정기간이 지나면 입찰참가를 할 수 있도록 제척기간제도를 도입"한다는 취지를 명시하였고, 이후 입법절차를 거쳐 2018년 12월 24일 지방계약법 제31조 제6항이 신설되었습니다.
신설된 규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방계약법 제31조 제6항: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제1항에도 불구하고 같은 항 각 호에 해당하는 행위가 종료된 때부터 5년(같은 항 제2호 및 제7호에 해당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7년)이 경과한 경우에는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할 수 없다.
■ 핵심 쟁점 1 — 제척기간 규정의 소급 적용 여부
실무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쟁점은, 2018년 12월 신설된 제척기간 규정이 그 이전에 발생한 부정당행위에도 적용되는가의 문제입니다.
원칙적으로 행정법령은 소급 적용되지 않습니다.
처분의 요건이 개정 법령 시행 이전에 완성된 경우, 처분 당시 시행 중인 개정 법령이 아니라 요건이 완성된 시기에 시행되던 법령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경우 예외적으로 소급 적용을 허용합니다.
"개정 법령을 소급하여 적용하더라도 일반 국민의 이해에 직접 관계가 없는 경우, 오히려 그 이익을 증진하는 경우, 불이익이나 고통을 제거하는 경우 및 단순한 정책변경에 따라 개정된 것이 아니라 위헌적 요소를 없애려는 등의 반성적 고려에서 개정된 경우 등의 특별한 사정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법령의 소급적용이 허용된다." (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8630 판결 등)
지방계약법 제31조 제6항의 제척기간 규정은 입찰업체의 법적 지위를 무한정 불안정한 상태로 방치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기본권 침해 소지를 해소하려는 반성적 고려에서 신설된 것으로, 단순한 정책 변경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따라서 규정 신설 이전의 부정당행위에 대해서도 제척기간이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는 국가계약법의 제척기간 규정에 관하여 같은 취지로 판단한 대구고등법원 2017누6113 판결(대법원 2018두46094로 확정)을 통해 사법적으로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 핵심 쟁점 2 — 제척기간의 기산점
제척기간의 소급 적용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기산점을 언제로 볼 것인가는 별개의 중요한 쟁점입니다. 기산점에 따라 처분의 가부(可否)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지방계약법 제31조 제6항은 "해당 행위가 종료된 때"를 기산점으로 명시합니다. 문언의 의미는 명확합니다. 처분의 원인이 되는 행위, 즉 부정당행위 자체가 종료된 시점이 기산점입니다.
실무에서 행정청이 범하기 쉬운 오류는 관련 형사 판결의 확정일을 기산점으로 삼으려는 시도입니다. 형사 재판이 장기간 진행된 경우, 판결 확정일을 기산점으로 하면 제척기간이 아직 도과하지 않은 것처럼 계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첫째, 법문(法文)의 해석상 기산점은 '처분의 원인이 되는 행위가 종료된 때'이지, '관련 형사 재판이 확정된 때'가 아닙니다.
둘째, 대법원은 행정처분과 형벌은 각각 그 권력적 기초, 대상, 목적이 다르며 독립적으로 부과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대법원 2017. 6. 19. 선고 2015두59808 판결) 행정청이 행정처분을 함에 있어 형사 재판의 결과를 기다려야 할 의무가 없는 것처럼, 형사 재판 확정일을 기산점으로 삼아야 할 근거도 없습니다.
셋째, 지방계약법 일부개정법률안 제안이유에서도 기산점을 '부정당업자 위반행위의 종료일'로 명시하고 있으며, 관련 하급심 판례(대구고등법원 2017누6113 판결) 역시 행위 종료일을 기산일로 삼았습니다.
■ 사례의 적용
필자가 수행한 사건에서 처분의 원인이 된 행위, 즉 직접생산확인증명서의 부정 제출은 2017년 5월경 종료되었습니다.
처분청이 부정당업자 처분을 예고한 것은 2023년 3월로, 행위 종료 시점으로부터 약 6년이 경과한 후였습니다.
처분청은 관련 형사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2022년 8월을 기산점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위에서 검토한 법리에 따라 기산점은 행위 종료 시점인 2017년 5월이 되어야 합니다. 이 경우 지방계약법이 정한 5년의 제척기간은 2022년 5월에 이미 도과하였고, 처분청은 더 이상 처분을 내릴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처분청은 청문 절차에서 이 주장을 받아들여 2023년 6월 처분 불가 결정을 통지하였습니다. 의뢰인은 아무런 제재 없이 사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실무적 시사점
이 사건은 부정당업자 처분에 대응하는 실무에서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첫째, 처분의 당부(當否)에 앞서 제척기간 도과 여부를 반드시 먼저 검토해야 합니다. 처분 사유가 존재하더라도 제척기간이 도과한 경우 처분 자체가 불가능하며, 이를 간과하면 의뢰인에게 불필요한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둘째, 제척기간의 기산점에 대한 행정청의 자의적 해석을 경계해야 합니다. 기산점은 법문에 따라 '부정당행위가 종료된 때'이며, 형사 재판 확정일이나 행정청이 위반 사실을 인지한 날이 기산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 제척기간 규정이 신설되기 이전의 부정당행위라 하더라도 제척기간 적용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대법원 판례 법리상 소급 적용이 가능하며, 이를 주장하지 않으면 의뢰인은 불필요하게 처분을 감수하게 될 수 있습니다.
■ 마치며
부정당업자 처분은 기업의 존립에 직결되는 중대한 행정처분입니다.
이에 대응함에 있어서는 처분 사유의 존부만을 다툴 것이 아니라, 처분권 자체의 시간적 한계를 포함한 모든 법적 방어 수단을 면밀히 검토하여야 합니다.
처분사전통지를 받은 순간부터 의견제출 기간은 짧습니다. 신속하고 정확한 법리 검토만이 의뢰인을 지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