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건설공사 분쟁에서 공사대금과 하자는 거의 항상 함께 등장합니다.
시공사는 공사를 완료했으니 잔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합니다. 반면 건축주는 누수, 균열, 마감 불량, 설비 하자 등을 이유로 잔금 지급을 거절합니다.
이때 양쪽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시공사는 “일부 보수할 부분이 있더라도 공사대금 전부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건축주는 “제대로 된 결과물을 받지 못했는데 잔금을 먼저 지급할 수는 없다”고 반박합니다.
이처럼 하자와 공사대금이 함께 문제 되는 사건에서는 단순히 “하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결론이 정해지지 않습니다. 실제 쟁점은 하자의 존재 여부를 넘어, 그 하자가 어느 정도인지, 보수에 필요한 비용은 얼마인지, 공사대금 잔액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하나입니다.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공사대금 전부를 거절할 수 있는지, 아니면 하자보수비 상당액만 공제하거나 유보할 수 있는지입니다.
1. 하자가 있으면 건축주는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가
공사 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경우, 건축주는 시공사에게 하자보수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667조 제1항은 완성된 목적물 또는 완성 전 성취된 부분에 하자가 있는 때에는 도급인이 수급인에게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하자의 보수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하자가 중요하지 않은데 그 보수에 과다한 비용이 필요한 경우에는 하자보수를 청구할 수 없습니다. 또한 같은 조 제2항은 도급인이 하자보수에 갈음하여 또는 하자보수와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즉, 건축주는 공사에 하자가 있을 경우 다음과 같은 권리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가. 시공사에게 직접 하자보수를 요구하는 방법
나. 시공사가 보수하지 않거나 보수가 불가능한 경우 하자보수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
다. 하자보수를 하더라도 추가 손해가 남는 경우 보수와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
라. 하자보수비 또는 손해배상액 상당 범위에서 공사대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공제를 주장하는 방법
다만 이 권리들이 인정된다고 하여 언제나 공사대금 전부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자보수청구권과 공사대금 지급거절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어느 범위에서 맞물리는지를 따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2. 하자 존재와 공사대금 전액 지급거절은 구별해야 한다
공사에 하자가 있으면 건축주 입장에서는 잔금 지급을 보류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률적으로는 하자가 있다는 사정과 공사대금 전액 지급거절이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잔금이 1억 원인데 하자보수비가 500만 원 정도인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건축주는 하자보수비 500만 원 상당액을 문제 삼을 수는 있겠지만, 특별한 사정 없이 잔금 1억 원 전체를 계속 지급하지 않는 것은 과도하다고 평가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자보수비가 잔금에 육박하거나, 하자가 중대하여 건물의 정상적인 사용 자체가 어려운 경우라면 건축주의 지급거절 범위는 훨씬 넓게 문제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무상 중요한 것은 “하자가 있다”는 주장 그 자체가 아니라, 다음 사항입니다.
가. 하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나. 그 하자가 시공상의 잘못으로 발생한 것인지
다. 하자보수에 필요한 비용이 얼마인지
라. 잔여 공사대금과 하자보수비 사이의 비율이 어떠한지
마. 하자가 공사 목적물의 사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바. 이미 지급된 공사대금과 실제 기성고 사이에 차이가 있는지
결국 공사대금 지급거절은 “전부냐, 일부냐”의 문제로 구체화되어야 합니다. 하자보수비가 잔금 일부에 불과하다면, 건축주는 전액 지급거절보다 하자보수비 상당액의 공제 또는 유보를 중심으로 주장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을 수 있습니다.
3. 동시이행항변은 하자보수비와 공사대금 사이의 견련성을 전제로 한다
하자 있는 공사에서 자주 문제 되는 법리가 동시이행항변입니다.
민법 제536조 제1항은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그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민법 제667조 제3항은 하자보수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청구 등에 관하여 민법 제536조를 준용하고 있습니다.
이를 공사대금 분쟁에 적용하면, 건축주는 일정한 경우 시공사의 하자보수의무 또는 하자보수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의무와 자신의 공사대금 지급의무가 서로 맞물려 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다만 동시이행항변이 인정된다고 하여 공사대금 전액 지급거절이 항상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도 도급인이 하자보수청구권을 행사하여 동시이행항변을 할 수 있는 기성공사대금의 범위가 구체적 사안에서 하자 및 손해에 상응하는 액수에 한정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한 사례가 있습니다. 또한 동시이행항변권이 자기 채무의 이행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사되는 경우 권리남용이 문제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동시이행항변은 공사대금 지급을 무조건 막는 수단이 아니라, 하자보수비와 공사대금 사이의 관계를 기초로 합리적인 범위에서 행사되어야 합니다.
4. 하자와 미시공을 구별해야 정산이 가능하다
공사대금 사건에서 건축주가 “하자가 많다”고 주장하는 경우, 실제로는 하자와 미시공이 함께 섞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자는 공사가 이루어졌지만 약정된 성능이나 품질을 갖추지 못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방수공사를 했으나 누수가 발생한 경우, 타일을 시공했으나 들뜸이 있는 경우, 창호를 설치했으나 틈새가 벌어진 경우가 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반면 미시공은 애초에 해야 할 공사를 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계약서나 도면상 설치하기로 한 시설을 설치하지 않았거나, 약정한 마감공정을 완료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이 구별은 공사대금 정산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하자는 하자보수비 또는 손해배상액 산정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반면 미시공은 기성고 산정, 미완성 공사비 공제, 잔여 공사비 산정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건축주가 공사대금 지급을 거절하려면 단순히 “부실공사”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각 항목을 나누어 정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방식입니다.
가. 방수공사는 시공되었으나 누수가 발생하였으므로 하자 항목으로 정리한다.
나. 계약상 설치하기로 한 설비가 설치되지 않았으므로 미시공 항목으로 정리한다.
다. 외벽 마감재가 들뜬 부분은 하자 항목으로 정리한다.
라. 도면상 예정된 난간 일부가 누락된 부분은 미시공 항목으로 정리한다.
이처럼 하자와 미시공을 분리해야, 공사대금에서 무엇을 공제할 것인지, 어떤 부분을 하자보수비로 산정할 것인지 명확해집니다.
5. 경미한 하자와 중대한 하자는 다르게 보아야 한다
하자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하자가 같은 법적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도장 일부의 미세한 흠, 실리콘 마감 일부의 불량, 쉽게 보수할 수 있는 스크래치와 같은 문제는 비교적 경미한 하자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보수비도 크지 않고, 공사 목적물의 사용 자체에 큰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반복적인 누수, 주요 구조부 균열, 방수 실패, 설비 기능 장애처럼 건물 사용이나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중대한 하자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민법 제667조 제1항도 하자가 중요하지 않은 경우 그 보수에 과다한 비용이 필요하다면 하자보수를 청구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은 하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원하는 방식의 보수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하자가 경미한데 보수비가 과도하다면, 보수청구 자체보다는 손해배상이나 금액 조정의 방식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자 분쟁에서는 하자의 수보다 하자의 성질이 중요합니다.
“하자가 여러 개 있다”는 주장보다, “그 하자 중 누수와 균열은 건물 사용에 직접적인 지장을 주고, 보수비도 상당하다”는 식의 구체적인 주장이 더 중요합니다.
6. 하자보수비 산정은 공사대금 분쟁의 핵심이다
하자와 공사대금이 함께 다투어지는 사건에서는 결국 하자보수비 산정이 핵심이 됩니다.
건축주는 하자가 중대하고 보수비가 크다고 주장합니다. 시공사는 하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경미하며, 건축주가 주장하는 보수비가 과다하다고 다툽니다.
양쪽의 주장이 크게 엇갈릴 경우 법원에서는 감정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에서는 일반적으로 다음 사항이 문제 됩니다.
가. 실제 하자가 존재하는지
나. 하자의 원인이 시공상 잘못인지
다. 보수 방법은 무엇이 적절한지
라. 보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마. 적정 하자보수비는 얼마인지
바. 기존 노후화, 사용상 부주의, 설계상 문제 등이 영향을 미쳤는지
사. 미시공 항목이 존재하는지
감정 결과는 공사대금 지급 범위와 하자보수비 공제 범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자 사건에서는 감정이 시작된 뒤에 대응하는 것보다, 감정 전 단계에서 하자 항목과 증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7. 건축주가 유의해야 할 실무 포인트
건축주가 하자를 이유로 공사대금 지급을 거절하려면 다음 사항을 유의해야 합니다.
첫째, 하자 항목을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합니다.
“공사가 엉망이다”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어느 위치에 어떤 하자가 있는지 사진, 영상, 점검표 등으로 남겨야 합니다.
둘째, 시공사에게 하자보수 요구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하자라면 시공사에게 하자 내용을 통지하고,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보수를 요구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민법 제667조 제1항도 상당한 기간을 정한 하자보수청구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셋째, 하자보수비 산정 자료를 확보해야 합니다.
보수 견적서, 전문가 의견, 현장 점검 자료 등이 있어야 공사대금 지급거절 또는 공제 범위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넷째, 다른 업체를 투입하기 전 증거를 보존해야 합니다.
다른 업체가 보수공사를 진행하면 기존 하자 상태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보수 전 사진과 영상, 하자 위치, 보수 범위, 비용 자료를 반드시 남겨두어야 합니다.
다섯째, 공사대금 전액 지급거절은 신중해야 합니다.
하자보수비가 잔금 일부에 불과한 경우에도 잔금 전부를 장기간 지급하지 않으면, 오히려 지연손해금이나 별도의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8. 시공사가 유의해야 할 실무 포인트
시공사 역시 하자 주장을 단순한 트집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공사대금을 청구하려면 공사 완료 또는 기성고를 입증해야 하고, 건축주가 주장하는 하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하자보수비가 적정한지 다투어야 합니다.
시공사는 다음 자료를 정리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가. 공사도급계약서
나. 견적서와 공사내역서
다. 설계도면과 시방서
라. 공정별 사진과 영상
마. 작업일보
바. 자재 구매 내역
사. 건축주와 주고받은 문자, 카카오톡, 이메일
아. 하자보수 요청에 대한 답변 자료
자. 실제 하자보수를 제안하거나 시도한 자료
차. 하자의 원인이 사용상 부주의, 설계 문제, 유지관리 문제라는 점을 뒷받침할 자료
시공사는 “하자가 없다”는 주장만 반복하기보다, 설령 일부 하자가 있더라도 그 하자는 경미하고 보수 가능하며, 건축주가 주장하는 공사대금 전액 지급거절은 과도하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9. 하자 확대에 건축주의 사정이 있는지도 문제 될 수 있다
하자담보책임은 원칙적으로 수급인에게 인정되는 책임이지만, 하자 발생이나 손해 확대에 건축주의 사정이 관여한 경우에는 손해배상 범위에서 참작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수급인의 하자담보책임이 법이 특별히 인정한 무과실책임이라고 하더라도, 담보책임이 공평의 원칙에 기초한 것인 이상 하자 발생 및 확대에 관여한 도급인의 잘못을 손해배상 범위에서 참작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하자 사건에서는 시공상 잘못만 볼 것이 아니라, 건축주의 사용상 부주의, 유지관리 소홀, 하자 발견 후 방치, 임의 보수로 인한 손해 확대 여부도 함께 검토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수를 발견하고도 장기간 방치하여 피해가 확대된 경우, 임의로 다른 공사를 진행하면서 기존 하자 상태를 훼손한 경우, 유지관리 지침을 지키지 않아 문제가 커진 경우에는 손해배상 범위에서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10. 결론
공사에 하자가 있다면 건축주는 하자보수청구, 하자보수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청구, 보수와 함께하는 손해배상청구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정한 경우 하자보수비 또는 손해배상액 상당 범위에서 공사대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공제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사대금 전부를 당연히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사대금 지급거절이 정당한지는 하자의 내용과 정도, 보수 가능성, 하자보수비 규모, 잔금 액수, 공사 목적물의 사용 가능성, 하자와 공사대금 사이의 견련관계를 종합적으로 보아 판단해야 합니다.
건축주는 하자 항목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보수비를 산정한 뒤, 그 범위에서 지급거절 또는 공제 주장을 해야 합니다.
시공사는 공사 완료 정도, 하자의 경미성, 보수 가능성, 하자보수비 산정의 과다 여부를 자료로 설명해야 합니다.
결국 하자 있는 공사에서 공사대금 분쟁의 핵심은 “하자가 있다”는 말 자체가 아닙니다. 하자를 보수하는 데 얼마가 필요한지, 그 금액을 공사대금에서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그리고 그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가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하자와 공사대금이 함께 문제 되는 사건이라면 계약서, 도면, 공사내역서, 하자 사진, 보수 견적서, 시공사와 건축주 사이의 연락 내역을 먼저 정리한 뒤 법률적으로 지급거절 또는 공제 가능 범위를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