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토지 소유자가 무단점유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 가장 직관적인 선택지는 건물 철거 및 토지 인도 청구입니다.
"내 땅을 돌려달라"는 요구는 법적으로도 정당하고, 심정적으로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철거 청구가 언제나 소유자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주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필자는 토지 무단점유 분쟁에서 건물 철거 청구로 소송을 시작하여 월 1,000만 원 이상의 임료를 10년간 확보하고, 기간 만료 후 완전한 원상 회복을 보장받는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으로 사건을 마무리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 칼럼에서는 해당 사례를 통해 토지 분쟁에서 조정이 갖는 실무적 의미와, 소유자 입장에서 '이기는 소송'이 무엇인지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1. 사안의 개요
의뢰인들은 세 필지 토지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이 토지들 위에는 인접 부지를 본점으로 두고 영업 중인 LPG 충전소 회사가 수십 년간 시설물을 설치·운용하며 점유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점유의 발단은 구 소유자들과의 사용대차 내지 사실상의 이용 허락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의뢰인들이 해당 토지를 취득한 이후, 점유자에게 내용증명을 통해 무단 사용 중단 및 반환을 요구하였음에도 점유자는 이를 무시하고 영업을 계속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뢰인 가족 중 한 명이 해당 회사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후 복직이 불가능한 상황에까지 이르면서, 의뢰인들은 법적 대응을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2. 선행 판결과 법적 지형의 확인
이 사건에 앞서, 의뢰인들은 이미 동일한 점유자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진행한 바 있었습니다. 해당 사건에서 법원은 점유자가 토지를 무단 사용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토지 인도 완료일까지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금 지급을 명하였습니다.
점유자 측은 "사용대차 계약에 기한 점유권원이 있다"고 항변하였으나, 법원은 의뢰인들의 반환 요구 내용증명 발송으로 사용대차계약이 적법하게 해지되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제3자 명의의 필지에 대해서는 점유자가 임차권으로 대항할 수 없다는 점도 확인되었습니다.
이처럼 피고의 무단점유 사실은 선행 판결을 통해 이미 법적으로 확정된 상태였습니다.
필자는 이를 본 사건의 핵심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이미 다투어진 사실관계를 다시 입증하는 데 소송 역량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고, 그 대신 의뢰인에게 가장 유리한 결론을 설계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3. 전략적 판단: 철거 청구를 협상력으로 전환하다
철거 및 명도 소송에서 승소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의뢰인에게 최선의 결과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실무적으로 다음과 같은 현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 철거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강제집행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수반됩니다.
둘째, 상대방이 수십 년간 해당 부지에서 영업을 유지해온 경우, 물리적 철거의 범위와 방법을 둘러싼 추가 분쟁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셋째, 이 사건과 같이 지하 매설 설비와 대형 구조물이 복잡하게 설치된 LPG 충전소의 경우, 집행 과정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집니다.
반대로, 점유자 입장에서 "즉시 퇴거"라는 결과는 영업 기반 자체를 잃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는 곧 협상 테이블에서의 강력한 압박 수단이 됩니다.
필자는 이 구조를 활용하여, 단순한 철거·명도가 아닌 '의뢰인에게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면서 장래의 완전한 원상 회복도 보장하는 결론'을 목표로 사건 전략을 수립하였습니다.
4.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의 구조와 내용
법원은 이 사건을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이 결정은 당사자가 2주 이내에 이의를 신청하지 않으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 즉 확정판결에 준하는 집행력을 가집니다(민사조정법 제34조).
결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임대차 관계의 법적 확정
점유자는 2023년 11월부터 2033년 11월까지 10년간 세 필지 토지를 점유·사용할 권리를 갖되, 그 법적 근거를 임대차계약에 갈음하는 이 결정으로 확정하였습니다. 기간 만료와 동시에 지상의 모든 건물·시설·구조물을 철거하고 토지를 인도할 의무가 발생합니다.
② 매년 증액되는 임료 구조
임료는 첫 해 월 900만 원을 기준으로 매년 약 5%씩 상승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구체적 금액은 아래와 같습니다.
임대차 연도월 임료1년차 (2023.11~2024.11)9,000,000원2년차 (2024.11~2025.11)9,450,000원3년차 (2025.11~2026.11)9,922,500원4년차 (2026.11~2027.11)10,418,625원5년차 (2027.11~2028.11)10,939,556원……10년차 (2032.11~2033.11)13,961,950원
초기 연간 수령액은 약 1억 800만 원, 마지막 해에는 약 1억 6,754만 원에 달하는 구조입니다.
고정 금액이 아닌 상승 구조를 설계한 이유는, 장기 계약에서 명목 금액이 고정되면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실질 수령액이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③ 이행 담보: 2회 연체 시 즉시 해지 및 철거·인도 조항
조정 합의의 가장 큰 리스크는 상대방이 이행을 거부하거나 지체하는 경우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점유자가 연속 또는 단속을 불문하고 임료 지급기일을 2회 연체하거나 기정의 금원을 기한 내 납부하지 않을 경우, 별도의 최고 없이 임대차가 즉시 해지되고 철거 및 토지 인도 의무가 자동으로 발동되도록 조항을 설계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합의 조건이 아니라,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집행권원에 포함된 조항입니다. 따라서 연체 사실이 확인되는 즉시 별도 소송 없이 강제집행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④ 관련 소송의 일괄 정리 및 과거 미지급금 정산
항소심에서 진행 중이던 관련 소송(본소·반소)을 이번 조정과 함께 쌍방 취하로 종결하였습니다. 아울러 무단점유 기간에 발생한 차임 상당 손해금—원금, 지연손해금, 기간별 월 금액 정산분 포함—을 조정 조항에 반영하여 과거 분쟁까지 일괄 해소하였습니다.
5. 실무적 시사점
이 사건은 토지 무단점유 분쟁의 해결 방식에 관한 몇 가지 실무적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첫째, 선행 판결은 협상력의 원천이다. 관련 소송에서 점유자의 무단점유 사실이 이미 확인된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본 소송에서 사실관계 입증의 부담을 줄이고 협상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둘째, 소유자의 진짜 목표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철거'는 법적 권리의 실현이지만, 소유자에게 실질적 이익이 무엇인지는 개별 사안에 따라 다릅니다.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임료 수익을 원하는 경우, 판결보다 조정이 더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조정의 핵심은 이행 담보 조항 설계에 있다. 조정이 판결보다 약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이행 담보 조항이 잘 설계된 조정결정은 오히려 더 유연하고 실효적인 집행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2회 연체 시 즉시 해지 및 철거' 구조는 의뢰인에게 지속적인 법적 통제력을 부여합니다.
넷째, 분산된 분쟁은 하나의 테이블에서 정리해야 한다. 관련 소송이 여럿 존재하는 경우, 개별 사건을 따로 처리하면 비용과 시간이 배가됩니다. 이 사건처럼 하나의 조정 과정에서 관련 소송 취하, 과거 미지급금 정산, 장래 임료 확정을 동시에 처리하는 방식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나가며
토지 무단점유 분쟁에서 '이기는 소송'의 의미는 판결문에 "피고는 철거하라"는 문구를 담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의뢰인에게 가장 확실하고, 가장 집행 가능하며, 가장 큰 실익이 남는 결론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철거 청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최선의 결론을 향한 강력한 협상 수단입니다. 이 사건은 그 원칙을 실무에서 구현한 하나의 사례입니다.
토지 무단점유, 명도·철거 분쟁, 임료 청구 등과 관련하여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신 경우 언제든지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