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목록으로

[민사] 지방자치단체의 약정해제권에도 5년의 제척기간이 적용될 수 있는가 — 계약 체결 후 5년을 넘긴 해제 통보의 효력과 미완의 쟁점

KY파트너스2026년 3월 17일

Ⅰ. 문제의 소재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와 용역·물품·공사 계약을 체결한 사업자가 수년의 세월이 흐른 후 발주처로부터 계약 해제 통보와 선금 반환 요구를 받는 사례가 있습니다. 발주처의 해제 사유가 계약 체결 당시 이미 존재하였으나, 관련 형사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계약이 장기간 정지 상태로 방치되다가 형사판결 확정 후 뒤늦게 해제권이 행사되는 유형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때 계약 상대방은 해제 통보의 실체적 정당성뿐 아니라, 해제권 행사 자체의 시간적 한계, 즉 제척기간(除斥期間) 도과 여부를 반드시 검토하여야 합니다. 지방계약법 제30조의2 제1항은 계약 해제 사유를 열거하고 있으나, 약정해제권의 제척기간에 관한 명시적 규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직접 수행한 사건을 바탕으로, 지자체의 약정해제권에 5년의 제척기간이 적용될 수 있다는 논거와 그 한계를 체계적으로 검토합니다.

Ⅱ. 사안의 개요

A사는 광역지방자치단체(이하 '발주처')와 조형물 디자인·제작·설치 용역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계약기간은 4개월에 불과하였고, A사는 선금 1억 원을 지급받아 사업을 준비하였습니다.

계약 체결 직후 발주처는 A사 실운영자에 대한 형사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통보받았습니다. 발주처는 이미 선금을 지급한 상태에서도 계약을 정지시켰고, 이후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A사는 계약이 재개될 것이라는 발주처의 반복적인 통지를 신뢰하며 매년 선금보증보험을 연장하였고, 그 과정에서 보험료 수백만원을 추가 지출하였습니다.

형사판결이 확정된 후, 발주처는 계약 체결로부터 약 5년 7개월이 지난 시점에 A사에 계약 해제를 통보하고, 선금 전액에 5년 넘는 기간의 이자를 가산하여 반환을 요구하였습니다. 해제 근거는 지방계약법 제30조의2 제1항 제3호, '입찰 과정에서 거짓 서류를 제출하여 부당하게 낙찰을 받은 경우'였습니다.

A사는 계약 해제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1심에서 전부 패소하였습니다. 1심 법원은 거짓 서류 제출로 낙찰받은 사실이 형사판결로 확정된 이상 발주처의 해제는 정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필자는 2심부터 사건을 수임하였습니다.

Ⅲ. 쟁점의 전환 — 실체가 아닌 시간의 문제

1심은 해제 사유의 존부, 즉 실체적 정당성만을 판단하였습니다. 필자는 2심에서 논의의 축을 달리하였습니다. 해제 사유가 존재하는지와 별개로, 발주처가 그 해제권을 적법하게 행사할 수 있는 시간적 범위 내에 있었는지를 정면으로 문제 삼은 것입니다.

계약 체결로부터 5년 7개월이 경과한 시점의 해제 통보. 이것이 제척기간 내의 적법한 권리행사인지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Ⅳ. 5년 제척기간 적용을 뒷받침하는 법리적 논거

1. 형성권으로서의 해제권과 제척기간의 일반 법리

해제권은 일방의 의사표시만으로 기존 계약관계를 소급적으로 소멸시키는 형성권입니다. 대법원은 법률에 존속기간의 정함이 없는 민사상 형성권의 제척기간을 원칙적으로 10년으로 봅니다(대법원 88다카25342, 90다카4409 판결 등). 이는 형성권 행사 결과 발생하는 채권의 소멸시효가 10년(민법 제162조 제1항)이므로, 수단인 형성권의 행사 기간이 목적인 채권의 행사 기간보다 길어서는 안 된다는 균형의 원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2. 상사거래관계에서의 확립된 5년 법리

상사거래관계에서 약정해제권의 제척기간은 5년이라는 것이 확립된 법리입니다. 서울고등법원 2015나4841 판결(대법원 2015다78703으로 확정)은 상사채권의 단기소멸시효를 5년으로 정한 상법 제64조의 취지를 원용하여 이를 명확히 하였고, 같은 법리는 다수의 판결에서 반복 확인되었습니다. 계약 해제로 인한 원상회복청구권의 소멸시효가 5년인 이상(대법원 93다21569 판결), 수단인 약정해제권의 제척기간도 이에 균형을 맞추어 5년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3. 지자체 계약으로의 법리 확장

지방재정법 제82조 제1항은 지자체의 금전채권 소멸시효를 5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2016헌바470 전원합의체 결정)가 확인하였듯이, 그 입법 목적은 채권·채무관계를 조기에 확정하고 예산 수립의 불안정성을 제거하여 지자체 재정을 합리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신속한 법률관계 확정의 필요성은 금전채권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계약 해제권이라는 형성권의 행사에도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지자체의 계약 해제로 인한 원상회복청구권의 소멸시효가 5년인 이상, 그 수단인 약정해제권의 제척기간도 5년으로 보는 것이 균형의 원리에 부합합니다.

4. 기산점 — 계약 체결일

대법원은 제척기간의 기산점을 원칙적으로 '권리가 발생한 때'로 봅니다(대법원 94다22682 판결). 권리자가 권리의 존재나 행사 가능성을 알지 못하였더라도 기산점에 영향이 없습니다. 이 사건에서 해제 사유인 '거짓 서류 제출에 기한 낙찰'은 계약 체결일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발주처가 형사판결 확정 후에야 해제권 행사를 결정하였다고 하여 기산점이 판결 확정일로 이동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이를 허용한다면, 형사소송의 진행 기간에 따라 계약 상대방이 사실상 무기한 불안정한 지위에 놓이는 결과가 발생하며, 이는 제척기간 제도의 본질적 취지에 반합니다.

Ⅴ. 실효의 원칙에 의한 보완적 논거

제척기간 도과 여부와 별개로, 실효의 원칙 역시 중요한 방어 논거입니다. 대법원은 권리자가 충분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상당한 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아 상대방에게 권리가 더 이상 행사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형성한 경우, 뒤늦은 권리행사는 신의칙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0다89654 판결).

이 사건에서 발주처는 해제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5년 넘게 계약 정지 상태를 유지하면서, 계약 재개 예정일을 명시하며 선금보증보험 연장을 반복 요구하였습니다. 이는 A사로 하여금 계약이 재개될 것이라는 합리적 신뢰를 형성하게 한 것이며, A사는 그 신뢰를 바탕으로 470만 원 상당의 보험료를 지출하는 등 불이익을 감수하였습니다. 실효의 원칙은 이미 확립된 대법원 법리로서, 제척기간 주장과 함께 유력한 방어 논거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Ⅵ. 미완의 쟁점 — 그러나 설득력 있는 주장

지자체가 당사자인 계약에서 약정해제권의 제척기간을 5년으로 명시적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은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필자가 위 논거를 2심에서 정면으로 전개하였으나, 해당 사건은 법원의 판단 전 조정으로 종결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쟁점은 법리적 주장의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지, 확립된 결론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 둡니다.

다만,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실무는 공무원 조직이 담당합니다. 소송을 끝까지 진행하여 법원의 판단을 받는 것이 실무진 입장에서는 책임 소재가 명확해져 오히려 부담이 없는 선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에서 전부 승소한 발주처가 2심에서 조정을 선택하고 선금 일부만 반환받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하였다는 사실은, 이 논거가 단순한 항변의 수준을 넘어 발주처 역시 패소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게 만들었음을 시사합니다.

Ⅶ. 시사점

지자체 계약 해제 분쟁에서 계약 상대방은 해제의 실체적 적법성만을 다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해제 사유의 존부 못지않게, 해제권 행사의 시간적 한계를 먼저 검토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합니다.

발주처의 계약 해제 통보가 계약 체결로부터 수년이 경과한 시점에 이루어졌다면, 제척기간 도과 여부와 실효의 원칙을 방어 전략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1심에서 전혀 다루어지지 않은 쟁점이 2심에서 전세를 뒤바꿀 수 있다는 것, 이 사건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KY파트너스 로고공동법률사무소 KY파트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