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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부동산] 도급인의 지시에 따른 시공과 수급인의 하자담보책임 면제 — 민법 제669조의 법리와 실무적 함의

KY파트너스2026년 4월 13일

■ 문제의 제기

건설도급계약에서 발주자(도급인)는 공사 목적물의 완성을 위하여 수급인에게 각종 기술적·행정적 지시를 내립니다. 이 지시는 설계도면의 형태로 미리 제공되기도 하고, 공사 진행 중에 현장 여건 변화나 발주자의 의사 변경에 따라 구두 또는 서면으로 추가·변경되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건축 법령의 기준이나 계약상 시방에 반하는 지시가 내려지기도 하며, 발주자가 "책임은 내가 진다"는 언명을 덧붙이며 수급인의 이행을 강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지시에 따라 공사를 수행한 수급인에게, 목적물 완성 후 발주자가 태도를 바꾸어 하자담보책임 또는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하자보수 및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수급인이 발주자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에 대한 법적 책임까지 떠안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건설 실무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핵심 쟁점입니다.

이 글은 민법 제669조가 이러한 상황에서 수급인에게 부여하는 법적 보호의 요건과 한계, 그리고 실무적 대응 방안을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 민법 제669조의 구조와 법적 성격

민법 제669조는 "전2조의 규정은 목적물의 하자가 도급인이 제공한 재료의 성질 또는 도급인의 지시에 기인한 때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수급인이 그 재료 또는 지시의 부적당함을 알고 도급인에게 고지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합니다.

본조가 적용을 배제하는 '전2조'는 수급인의 하자담보책임을 규율하는 민법 제667조(하자보수청구권 및 손해배상청구권) 및 제668조(계약해제권)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하자의 발생 원인이 도급인 측에 있을 경우 수급인은 무과실책임인 하자담보책임으로부터 면제된다는 것이 이 조문의 핵심 구조입니다.

민법상 수급인의 하자담보책임은 과실의 존부를 불문하고 성립하는 법정 무과실책임입니다(대법원 1980. 11. 11. 선고 80다923, 924 판결 등 참조). 이는 수급인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였더라도 목적물에 하자가 있으면 원칙적으로 책임을 부담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민법 제669조는 이러한 엄격한 무과실 책임 체계에서 "하자의 원인을 제공한 자가 그 결과를 부담해야 한다"는 공평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예외 규정으로 기능합니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8조 제2항 역시 "수급인은 발주자의 지시에 따라 시공한 경우 이로 인해 발생한 하자에 대하여는 하자담보책임이 없다"고 규정하여 민법 제669조의 취지를 건설공사 분야에서 확인하고 있으며, 2024년 1월 개정을 통해 수급인의 고지의무 위반 시 면책 불인정 규정도 명문화하였습니다. 나아가 동법 제28조 제4항은 이 규정을 수급인과 하수급인 사이의 하도급 관계에도 적용하도록 하여 하수급인의 보호에도 기여합니다.


■ 면책 요건의 분석

1. 도급인의 지시에 기인한 하자

면책의 첫 번째 요건은 목적물의 하자가 도급인의 지시에 기인하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도급인의 지시'는 설계도면, 시방서, 현장 지시서, 구두 지시 등 형식에 제한이 없습니다. 법원은 수급인이 설계도면 등의 기재대로 시공한 경우를 도급인의 지시에 따른 것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그 도면의 부적당함을 알고 고지하지 않은 것이 아닌 이상 수급인에게 하자담보책임을 지울 수 없다고 봅니다. 지시와 하자 사이의 인과관계 역시 요건이므로, 도급인의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지시로 인하여 하자가 발생하였음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면책을 주장하는 수급인이 이 요건(지시의 존재와 그에 기인한 하자)을 입증할 책임을 부담합니다.

2. 수급인의 고지의무와 그 한계

본조 단서는 수급인이 재료 또는 지시의 부적당함을 알면서도 도급인에게 고지하지 않은 경우에는 면책을 부정합니다. 이 고지의무는 건설 분야의 전문가인 수급인이 문제점을 인식하였음에도 이를 묵과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는 취지에서 인정됩니다.

그러나 고지의무의 범위는 무한정 확장될 수 없습니다. 고지의무가 발생하려면 수급인이 재료나 지시의 부적당함을 실제로 인식하였어야 합니다. 단순한 주의 부족으로 인식하지 못한 경우는 고지의무 위반의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도급인 스스로 이미 부적당함을 알고 있었거나, 도급인이 수급인보다 우월한 전문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고지의무 자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학설과 실무는 고지의무를 신의칙상 당연히 알려야 할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 한정하는 방향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도급인과 수급인이 동등하게 인식하기 어려운 사항은 수급인에게 일방적인 고지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봅니다.

단서 규정의 요건, 즉 "수급인이 부적당함을 알고 고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의 입증 책임은 도급인이 부담합니다.


■ 건설 실무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분쟁 유형

유형 1 — 설계 결함과 하자담보책임의 귀속

발주자가 제공한 설계도서의 결함이 하자의 원인인 경우, 수급인이 도면 그대로 시공하였다면 민법 제669조에 따른 면책이 원칙적으로 인정됩니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8조 제2항이 "발주자의 지시에 따라 시공한 경우"를 면책 사유로 명시하고, 법원이 설계도면대로의 시공을 도급인의 지시에 따른 것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도 이러한 취지입니다. 다만 설계의 명백한 결함을 수급인이 시공 과정에서 인식하고도 발주자에게 이를 통보하지 않은 경우에는 단서 규정이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 유형에서는 수급인이 감리 또는 발주자에게 설계 의문사항을 질의한 기록, 설계 검토 의견서, 현장 회의록 등이 면책의 주요 증거가 됩니다.

유형 2 — 자재 지정·공급에 따른 하자

발주자가 자재를 직접 지정하거나 조달하여 제공한 경우, 그 자재의 성질로 인하여 하자가 발생하면 수급인의 하자담보책임은 민법 제669조 전단에 따라 면제됩니다. 문제는 발주자가 특정 자재를 '권고'하거나 '사실상 강요'하였는지, 아니면 수급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것인지를 두고 분쟁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계약서, 자재 승인 문서, 발주서 등의 서면 자료가 이 판단의 핵심 증거가 됩니다.

유형 3 — 구두 지시에 따른 공법 변경

발주자(또는 그 대리인인 현장 감리)가 구두로 설계 변경 또는 공법 변경을 지시하고, 수급인이 이에 따라 시공하였으나 나중에 발주자가 그 지시의 존재를 부인하는 유형입니다. 법원은 지시의 존재에 대한 입증 책임을 수급인에게 요구하므로, 구두 지시를 문자메시지나 이메일로 확인하거나 공사일지에 기재해두지 않으면 민법 제669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유형 4 — 법령 위반 지시와 수급인의 책임 귀속

발주자가 법령 기준에 미달하는 자재 사용이나 공법을 지시하며 "책임을 지겠다"고 약정한 경우, 수급인이 이를 따른 결과에 대하여 행정적 제재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민법 제669조는 도급인과 수급인 사이의 하자담보책임을 규율하는 조문이므로, 제3자에 대한 불법행위 책임이나 행정적 제재의 영역에서는 그 적용 범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유형은 법적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영역으로, 수급인이 해당 지시를 이행하기 전에 법적 검토를 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수급인의 실무적 대응 방안

민법 제669조의 보호를 실질적으로 받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치들이 현장에서부터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시의 서면화와 보존. 발주자의 지시는 반드시 서면으로 확보하여야 합니다. 구두 지시가 이루어진 경우에는 지시 직후 이메일 또는 문자메시지로 지시 내용을 확인하는 메시지를 발송하고 그 회신 또는 발송 기록을 보존하여야 합니다. 현장 회의록에는 참석자, 결정 사항, 지시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재되어야 하며, 가능한 한 발주자 측의 서명을 받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고지 이행의 기록. 수급인이 지시나 재료의 문제점을 인식한 경우에는 이를 발주자에게 서면으로 고지하였다는 기록을 반드시 남겨두어야 합니다. 이는 단서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고 면책의 완결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공문, 이메일, 질의응답서 등의 형태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설계 변경의 공식화. 발주자의 지시로 당초 설계와 다른 시공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반드시 설계 변경 승인 절차를 밟고, 이를 변경계약서 또는 추가공사 합의서로 공식화하여야 합니다. 이 절차가 생략된 경우 수급인이 임의로 설계를 변경한 것으로 인식될 위험이 있습니다.

현장 공사일지의 체계적 관리. 현장 공사일지는 단순한 작업 현황 기록에 그치지 않고, 발주자·감리의 방문, 지시 내용, 이에 대한 수급인의 의견 표명 등을 모두 기재한 법적 증거 자료로서의 기능을 하여야 합니다.


■ 시사점 — 계약 현장에서 법은 준비된 자를 보호합니다

민법 제669조는 건설 현장의 구조적 현실, 즉 수급인이 발주자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운 비대칭적 관계를 법이 인식하고 이를 교정하는 규정입니다. 하자의 원인이 발주자의 지시에 있음에도 수급인이 그 결과를 모두 부담하는 것은 공평의 원칙에 반하며, 법은 이를 명시적으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법적 보호는 수급인이 분쟁 발생 후 사후적으로 주장하는 것만으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도급인의 지시를 증명할 증거가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법리도 현실적 방어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민법 제669조의 보호를 실질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사가 진행되는 내내 지시의 내용과 고지 이행의 사실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임을 유념하여야 합니다.

건설 분쟁은 공사 과정에서 이미 그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쟁이 예상되거나 이미 발생한 경우, 조속히 전문 법률가와 함께 증거를 검토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수급인의 권리를 지키는 첩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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