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종료 후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으면, 임차인은 새로 체결한 임대차나 매매계약의 잔금을 치르지 못해 계약금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임대인의 책임이 법정이율에 따른 지연손해금에 그치는지, 몰취된 계약금까지 미치는지가 문제됩니다. 의정부지방법원 2026. 10. 2. 선고 2025나202407 판결은 후자의 손해까지 배상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사안의 개요
임차인은 보증금 1억 6,000만 원에 주택을 임차했고, 만기 약 2개월 전 갱신거절을 통지했습니다. 이어 보증금 반환 여부에 대한 확답을 거듭 요청했습니다.
임대인이 답하지 않는 사이 임차인은 보증금 2억 2,000만 원의 신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 2,200만 원을 지급했습니다.
임대인은 만기 전 면담에서 "언제 지급할 수 있을지 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만기 전날에는 "새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아야 지급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신규 계약은 잔금 미지급으로 해제되었고, 임차인은 1,5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제1심은 이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으나, 항소심은 이를 인용했습니다.
임대인이 자기 사정을 들어 만기 반환이 어렵다고 한 것은 이행거절에 해당합니다
보증금 반환의무와 목적물 인도의무는 동시이행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미리 이행하지 않을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자기 채무의 이행제공 없이도 상대방을 지체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대법원 2025. 5. 15. 선고 2024다321973 판결 등).
이 판결은 여기서 나아가, 지연배상은 계약해제나 전보배상보다 상대방에게 미치는 효과가 가벼우므로 이행거절 여부의 판단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주택 임차인은 종료 후 새 계약이 예정된 경우가 많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임대인이 재임대 등 자신의 사정을 내세워 종료일에 보증금을 반환할 수 없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이행거절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임차인이 인도에 아무 장애가 없었다는 사정도 함께 고려되었습니다.
신규 임차인의 보증금 수령은 반환의무의 조건이 아닙니다
법원은 별도의 약정이 없는 한, 새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받는지 여부가 반환의무의 조건이 되거나 이행기를 유보시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관행'은 임대인의 사정만으로 임차인의 거주 이전과 재산 처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고, 그 시기도 불확정적이라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이를 면책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민법 제397조는 특별손해 배상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금전채무 불이행의 손해배상액은 법정이율에 의한다는 민법 제397조가 특별손해 청구를 막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법원은 제397조는 제393조 제1항의 통상손해에 관한 특칙일 뿐, 제393조 제2항의 특별손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397조가 제393조와의 관계를 명시하지 않은 점
손해 증명이 필요 없다는 제397조 제2항만으로 특별손해 배제 취지를 단정하기 어려운 점
법정이율은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경우의 통상적 이율에 불과한 점
특별손해는 채무자의 예견가능성이 있을 때만 인정되어 채무자에게 부당하지 않은 점
매매대금 지급 지연으로 매도인이 제3자와의 계약금을 몰수당한 경우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1991. 10. 11. 선고 91다25369 판결도 들었습니다. 법원은 이 법리가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의무에 더욱 타당하다고 했습니다.
예견가능성과 상당인과관계도 인정되었습니다
임차인이 면담에서 신규 계약의 보증금과 계약금 액수를 고지한 점, 잔금 불이행 시 계약금이 몰취되는 것이 통상적이라는 점에서 예견가능성이 인정되었습니다.
신규 계약의 대출 특약을 근거로 한 임대인의 항변도 배척되었습니다. 대출 불가의 원인이 종래 보증금 대출의 미상환이었고, 반환받을 보증금이 신규 잔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Q&A
Q. 이 판결의 법리는 매매계약 등 다른 금전채무에도 적용될 수 있나요?
판결은 제397조와 제393조 제2항의 관계를 일반론으로 설시하면서, 매매대금 지연에 관한 91다25369 판결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다만 결론은 주택 임차인의 지위를 특히 고려한 것이므로, 다른 유형에서는 예견가능성과 인과관계를 사안별로 따져야 합니다.
Q. 임차인은 언제, 무엇을 고지해야 하나요?
신규 계약을 체결한 즉시 계약금과 잔금일, 몰취 가능성을 기록이 남는 방법으로 알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고지가 늦어질수록 예견가능성 증명이 어려워집니다.
맺음말
이 판결은 보증금 반환 지연을 단순한 이자 문제로 보지 않고, 임차인의 다음 거래에 미치는 손해까지 임대인의 책임 범위에 넣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임차인으로서는 갱신거절 통지, 반환 확답 요청, 신규 계약 고지, 인도 준비를 모두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이 배상 청구의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