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 제기
건설공사 하자보수 손해배상 소송에서 수급인 측이 완전한 승소를 거두는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법원이 선임한 감정인이 상당한 금액의 하자보수비를 인정하면, 재판은 사실상 배상액의 규모를 조정하는 국면으로 진행되는 것이 통례입니다. 감정인이 청구금액과 동일한 수준의 하자를 인정한 경우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2026년 3월 18일 선고된 대전지방법원 판결(2023가단221936)은 이 통례를 정면으로 깨뜨린 사례입니다. 감정인은 원고가 청구한 약 6,556만 원 상당의 하자보수비를 그대로 인정하는 감정결과를 제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전액 기각하였습니다. 그 결과를 가능하게 한 것은 판결 선고 훨씬 이전, 감정 절차 단계에서의 선제적 법리 전략이었습니다.
■ 사건의 배경과 쟁점
원고는 호텔 리모델링 공사(도급금액 약 9억 2천만 원)를 의뢰하였고, 시공자는 2018년 6월 28일 공사를 완료하였습니다. 이후 원고는 시스템창호 불량, 욕실 방수불량, 환기구 폐쇄, 복도 폭 미달, 외부 조적벽 오시공, 주차장 펜스 경계 침범 등 다수의 하자를 주장하며 약 6,556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법원 감정 절차에서 감정인은 원고가 주장하는 하자 항목들에 대하여 청구금액과 같은 수준의 하자보수비를 산정하는 감정결과를 제출하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통상적인 사건이라면 배상액 감액의 여지를 다투는 단계로 이행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쟁점은 그와 전혀 다른 차원에 있었습니다.
■ 감정 절차에서의 선제적 전략 — 하자 발생 시점의 감정항목 포함
건설산업기본법 제28조 제1항 및 제3항, 시행령 제30조 제1항 [별표 4]에 따르면, 이 사건 실내건축 전문공사의 하자담보책임기간은 1년입니다. 대법원은 이 기간의 법적 성격에 관하여, "건설산업기본법이 정하는 하자담보책임기간은 그 기간 내에 발생한 하자에 대하여 수급인이 발주자에 대한 하자담보책임을 진다는 하자발생기간을 뜻한다"고 명확히 정의하고, "위 기간 내에 하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수급인의 하자담보책임이 성립할 여지가 없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21. 8. 19. 선고 2020다264508 판결).
이 법리에서 도출되는 핵심 명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자가 책임기간 내에 발생하였다는 사실은 이를 주장하는 원고가 증명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증명이 없으면 감정인이 하자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담보책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동욱 변호사는 감정 절차가 진행되는 단계에서 이 법리를 실천적으로 적용하였습니다. 통상적인 감정은 하자의 존재와 보수비용의 산정에 집중하며, 하자의 발생 시점은 감정항목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정동욱 변호사는 이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각 하자 항목별로 발생 시점을 감정결과에 명시하여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습니다. 재판장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감정인에게 하자 발생 시점을 명시하도록 명하였고, 그 결과 다수의 하자 항목이 "준공 후 1년 이후 발생" 또는 "발생 시점 불명"으로 감정결과에 기재되었습니다.
이 감정결과는 이후의 판단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발생 시점이 책임기간 이후이거나 불명확한 항목들은 원고의 증명이 없는 것으로 처리되었고, 법원은 그 항목들에 대하여 별도의 상세한 설시 없이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판결문에 개별 하자별로 구체적인 판단이 설시된 항목들은 책임기간 내 발생 가능성이 문제된 일부 항목과 아래에서 살피는 도급인 지시 면책 항목에 한정된 것이었습니다.
■ 책임기간 내 발생이 다투어진 항목들에 대한 판단
책임기간 내 발생 여부가 구체적으로 다투어진 항목에 관하여,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원고의 주장을 배척하였습니다.
원고는 누수탐지 및 방수공사의 세금계산서와 이체내역을 제출하며 욕실 방수불량 등의 하자가 책임기간 내에 발생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원고가 제출한 누수탐지 및 방수공사는 2022년 3월과 2022년 11월에 이루어진 것으로, 준공일(2018. 6. 28.)로부터 약 4년이 경과한 시점이었습니다. 또한 공사 총괄지배인은 시공자가 2018년 9월경 이미 원고의 요청에 따라 방수불량 하자를 보수하였다고 진술하고 있어, 2022년의 방수공사가 준공 당시의 동일한 하자에 기인한다는 연결 고리 역시 성립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법원은 이를 종합하여 해당 하자가 책임기간인 1년 이내에 발생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도급인 지시에 기인한 하자와 민법 제669조의 적용
책임기간 도과 법리로 처리되지 않은 항목들, 즉 복도 폭 미달, 외부 조적벽의 단차 없는 시공, 주차장 펜스의 경계선 침범 설치에 대해서는 민법 제669조의 도급인 지시 면책 법리를 적용하였습니다.
민법 제669조는 완성된 목적물의 하자가 도급인의 지시에 기인한 때에는 수급인의 담보책임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합니다. 이는 하자의 귀책 원인이 수급인이 아닌 도급인 자신에게 있는 경우에 수급인에게 담보책임을 귀속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형평의 원리에 근거합니다.
이 사건에서 정동욱 변호사는 관계자 진술을 체계적으로 확보하였습니다. 공사 총괄지배인과 설계·감리 담당자는 모두 일관되게, 원고를 대리한 원고의 아들이 시공자에게 ①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취지로 좁은 복도 폭의 시공을 지시하였고, ② 조적벽을 단차 없이 시공하도록 지시하였으며, ③ 주차장 공간 확보를 위해 펜스 설치 지점을 직접 지정하여 시공하도록 지시하였다고 진술하였습니다. 법원은 이 진술들을 채택하여 해당 항목들의 시공이 도급인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인정하고, 민법 제669조에 의해 수급인의 담보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이 사건의 시사점
이 사건은 건설 하자 분쟁에서 수급인 측의 효과적인 방어 전략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첫째, 하자담보책임 방어의 핵심은 감정 절차의 설계에 있습니다. 감정인이 하자보수비를 인정하더라도, 그 하자가 책임기간 내에 발생하였다는 사실은 별개의 증명을 요합니다. 하자 발생 시점을 감정항목에 포함시키는 것은 이 증명을 원고의 부담으로 명확히 귀속시키는 절차적 전략입니다. 이 시도가 성공하면, 발생 시점이 불명확한 모든 하자 항목은 원고에게 불리하게 처리됩니다.
둘째, 도급인의 지시에 기인한 하자에 대해서는 민법 제669조를 적극 활용하여야 합니다. 공사 현장에서의 지시 경위는 서면으로 남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계자 진술을 조기에 체계적으로 확보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실무적으로 중요합니다.
셋째, 감정인의 판단과 법원의 판단은 별개입니다. 감정인의 역할은 하자의 존재와 보수비용을 기술적으로 확인하는 것에 한정됩니다. 담보책임의 성립 여부는 법원이 법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하며, 이 사건은 감정인이 인정한 하자보수비와 법원이 인정한 배상액이 전혀 달라질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 맺음말
이 사건의 승패는 판결 선고 전 감정 절차에서 사실상 결정되었습니다. 하자 발생 시점을 감정항목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순간, 감정인이 인정한 6,556만 원은 법리적으로 의미를 잃기 시작하였습니다. 건설 분쟁은 최후의 변론이 아니라 절차의 어느 지점에서 무엇을 주장하느냐가 결과를 결정합니다. 사건의 본질을 조기에 포착하고 법리와 절차를 결합한 전략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건설 전문 변호사의 역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