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에게는 법원이 직권으로 변호인을 붙여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때 피고인이 기댈 수 있는 것이 형사소송법 제33조 제2항의 국선변호인 선정청구이다.
대법원은 2026. 9. 23. 이 청구를 받은 법원이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고 재판을 마친 사건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2026도9242). 청구에 대한 법원의 응답 의무, 그리고 빈곤 사유를 어느 정도로 소명해야 하는지를 함께 보여 주는 판결이다.
법원은 선정청구에 대하여 반드시 결정을 하여야 합니다
법원은 피고인이 빈곤이나 그 밖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에 청구가 있으면 지체 없이 국선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형사소송법 제33조 제2항, 형사소송규칙 제17조 제3항).
대법원은 이 규정에 비추어 선정청구에 대하여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는 것은 위법하다고 하였다. 대법원 1995. 2. 28. 선고 94도2880 판결이 이미 같은 취지로 판시한 바 있고, 이번 판결은 이를 다시 확인하였다.
소명자료가 없어도 기록으로 사유가 드러나면 소명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피고인은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되어 2025. 8. 22. 제1심에서 징역 3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법정구속되지는 않았다. 항소하면서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하였는데 소명자료는 내지 않았다.
원심은 결정 없이 변호인이 없는 상태로 심리하여 항소를 기각하고, 선고 직후 피고인을 법정에서 구속하였다.
형사소송규칙 제17조의2는 소명자료 제출을 원칙으로 하되 기록에 의하여 사유가 소명되었다고 인정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대법원은 이 사건 기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제1심 의견서: 중학교 졸업 학력, 배달업 종사, 보증금 4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인 주거
경찰 피의자신문조서: 별다른 재산이 없고 월 300~400만 원가량의 수입 중 상당 부분을 채무 변제 등에 사용한다는 진술
항소이유서: 건강보험료 체납과 다른 채무의 미변제
대법원은 이러한 기록에 의하여 사선변호인을 선임하기 어렵다는 사유가 소명되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빈곤 소명이 부족하더라도 권리보호를 위한 선정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판결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그다음이다. 대법원은 빈곤에 관한 소명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피고인의 교육 정도와 가족관계, 공소사실의 내용, 제1심에서 선고된 형의 경중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권리보호를 위하여 국선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할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하였다.
판결문은 조항을 따로 적지 않았으나, 나이·지능·교육 정도 등을 참작하여 권리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때에 선정하도록 한 형사소송법 제33조 제3항과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결정을 하지 않은 위법이 언제나 파기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원심의 조치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지장을 초래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에 환송하였다.
반면 94도2880 판결에서는 같은 위법을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이 사유를 소명하지 않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판결 결과에 영향이 없다고 보아 상고를 기각하였다.
두 판결을 함께 보면, 결정을 누락한 위법이 파기로 이어지는지는 청구가 받아들여졌어야 할 사정이 기록에 나타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또한 이번 판결은 절차의 위법을 이유로 한 것이어서 환송 후 유무죄와 양형은 다시 심리된다.
불구속 피고인은 청구 시기와 자료를 스스로 챙겨야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33조 제1항은 구속된 때, 미성년자, 70세 이상, 듣거나 말하는 데 모두 장애가 있는 때, 심신장애가 의심되는 때, 사형·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된 때에 법원이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하도록 한다. 이러한 사건은 변호인 없이 개정하지 못한다(제282조).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불구속 피고인은 제2항의 청구를 하여야 한다.
공소장을 받은 뒤 또는 항소장을 낼 때 선정청구서를 함께 제출한다.
임대차계약서, 소득·채무 자료, 체납 내역 등 소명자료를 붙인다.
결정 통지가 없으면 재판부에 확인하고 공판기일에서도 결정을 요청한다.
Q&A
Q. 국선변호인을 청구한 뒤 사선변호인을 선임하면 어떻게 됩니까?
A. 국선변호인은 변호인이 없는 피고인을 전제로 한 제도이므로, 사선변호인이 선임되면 국선변호인 선정은 유지될 필요가 없게 된다.
맺음말
이번 판결은 새로운 법리를 세운 것이라기보다 법원의 응답 의무를 재확인하고, 기록에 의한 소명을 실제 사건에 적용해 보인 판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