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현장소장이나 안전관리책임자의 형사책임을 판단할 때 사고 직전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는지가 주로 문제 됩니다.
특히 근로자가 지시받은 작업방법과 다르게 작업하였거나, 누군가 안전장치를 임의로 해체한 사실이 확인된 경우에는 현장 관리자의 책임과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두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의무는 단순히 작업방법을 전달하거나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현장의 구체적인 위험을 파악하고, 실제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관리·통제 조치를 취하여야 합니다.
대법원은 갱폼의 고정볼트가 모두 해체된 상태에서 근로자가 약 30m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한 사건에서 이러한 원칙을 다시 확인하였습니다(대법원 2022도16668 판결).
갱폼과 함께 추락한 근로자
이 사건에서 하도급업체는 공동주택 신축공사 중 골조공사를 시공하고 있었고, 피고인은 해당 업체 소속 현장소장으로 근로자들의 작업과 안전을 관리하였습니다.
공사현장 아파트 외벽에는 작업발판 일체형 거푸집인 갱폼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갱폼 위에는 파라펫 시공을 위한 외측 유로폼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소속 근로자인 피해자에게 파라펫 유로폼 해체 작업을 지시하였습니다. 피해자는 유로폼을 해체하기 위해 갱폼 위에 올라갔다가 갱폼과 함께 약 30m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하였습니다.
사고 후 조사 결과 해당 갱폼을 벽체에 고정하는 볼트가 모두 해체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검사는 현장소장이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고 보아 업무상과실치사죄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기소하였습니다.
원심은 고정볼트를 해체한 사람이 따로 있다고 보았습니다
원심은 현장소장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피고인의 작업지시가 아니라, 누군가가 피고인의 지시와 무관하게 갱폼의 고정볼트를 모두 해체한 데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또한 피해자가 피고인의 지시와 달리 옥상 외부의 갱폼 위에서 작업할 것까지 현장소장이 예상하기는 어려웠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피고인에게 갱폼의 고정상태를 점검할 구체적인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의 행위와 피해자의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현장소장의 안전조치 의무를 이처럼 제한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였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는 실질적이어야 합니다
대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 안전보건규칙의 개별 조항만을 형식적으로 대조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사업장의 규모와 작업의 성격, 해당 작업에 내재된 위험,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산업재해의 내용, 재해의 발생 가능성, 안전조치에 필요한 기술 수준과 해당 규정이 사업주에게 안전조치를 명한 취지 등입니다.
따라서 안전보건규칙과 관련된 일정한 조치를 취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안전조치 의무를 모두 이행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거나 안전교육을 실시하였더라도 실제 현장의 위험을 제거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를 이행하였다고 볼 수 없습니다.
안전조치가 있었는지가 아니라, 그 조치가 실제로 예상 가능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는지가 판단의 핵심입니다.
위험한 작업을 직접 지시하지 않아도 책임질 수 있습니다
사업주나 현장소장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처벌되기 위해 반드시 위험한 작업을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지시하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한 작업이 계속될 가능성을 인식하면서 이를 그대로 방치하였다면 직접적인 작업지시가 없더라도 책임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장 관리자의 책임이 사고 직전의 지시 한마디에만 한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장 관리자는 작업계획을 수립하고, 작업순서를 통제하며, 위험구역에 대한 출입을 제한하고, 안전설비가 정상적인 상태로 유지되는지 확인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관리체계가 작동하지 않아 위험한 작업이 계속되었다면 작업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위로 위험장소에 진입하였는지만을 이유로 책임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대법원이 본 현장소장의 안전조치 의무
대법원은 피고인에게 갱폼 작업과 관련한 여러 구체적인 안전조치 의무가 있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먼저 현장소장은 갱폼의 양중·해체 작업을 할 때 작업의 범위와 절차를 사전에 정하여 갱폼 작업팀 근로자들에게 주지시켜야 했습니다.
특히 갱폼을 타워크레인에 매달기 전에 고정볼트를 미리 해체하지 않도록 작업순서를 통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갱폼이 인양장비에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볼트를 먼저 풀 경우 갱폼 전체가 추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갱폼 해체 작업이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면 관계 근로자가 아닌 사람이 갱폼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제한하여야 했습니다.
갱폼의 상·하부 고정볼트가 정상적으로 체결되어 있는지 수시로 점검할 의무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거푸집 해체팀 근로자들이 추락 위험이 있는 옥상에서 파라펫 유로폼을 해체할 때에는 갱폼 위가 아닌 별도의 안전한 작업발판을 설치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의무 위반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여지가 크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누가 볼트를 풀었는지는 중요한 쟁점이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이 사건에서 갱폼의 고정볼트를 실제로 누가 해체하였는지는 중요한 사실관계입니다.
그러나 고정볼트를 해체한 사람이 현장소장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현장소장의 책임이 곧바로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 공종의 근로자가 동시에 작업하는 건설현장에서는 특정 작업자가 임의로 안전장치를 해체하거나 작업순서를 변경할 가능성도 고려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현장소장이 책임을 다하였는지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중심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작업자별 업무범위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는지, 볼트를 임의로 해체하지 못하도록 작업절차가 통제되어 있었는지, 해체 작업이 중단된 동안 위험구역의 출입이 제한되었는지, 작업을 재개하기 전 고정상태를 다시 확인하였는지 등입니다.
이러한 조치가 없었다면 사고의 직접적인 계기가 제3자의 행동이었다고 하더라도 현장소장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은 별도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근로자의 작업방법 위반도 관리책임을 당연히 없애지는 않습니다
산업재해 사건에서 근로자가 지시와 다르게 작업하였다는 사정은 업무상과실과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만 근로자의 행동이 현장의 작업관행이나 관리실태에 비추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거나, 적절한 출입통제와 작업발판 설치로 방지할 수 있었던 경우라면 근로자의 과실만을 이유로 현장 관리자의 책임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추락 가능성이 높은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은 작은 작업방법의 변경도 사망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장소장은 작업자에게 단순히 “갱폼 위에서 작업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갱폼 위에 올라갈 필요가 없도록 안전한 작업발판을 설치하거나 갱폼에 대한 접근을 물리적으로 제한하여야 합니다.
안전관리 서류보다 실제 현장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수사기관과 법원은 작업계획서, 안전교육일지, 위험성평가표, 점검표 등 각종 안전관리 서류를 확인합니다.
그러나 서류가 작성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였다고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작업계획서의 내용이 실제 작업자들에게 전달되었는지, 교육내용과 실제 작업방법이 일치하였는지, 점검표에 기재된 사항이 현장에서 실제로 확인되었는지, 위험구역 출입통제가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를 함께 살펴보게 됩니다.
이번 판결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의무의 핵심이 기록의 존재가 아니라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사고 예방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현장소장의 형사책임을 판단할 때 확인할 사항
건설현장 사망사고에서 현장소장의 형사책임은 직책의 명칭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해당 현장소장에게 실제로 어떠한 업무와 권한이 부여되어 있었는지, 위험한 작업에 관하여 작업방법을 정하거나 변경할 권한이 있었는지, 근로자들의 출입과 작업을 통제할 수 있었는지, 안전시설을 설치하거나 작업중지를 명할 수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여야 합니다.
사고 이후에는 다음과 같은 자료가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작업계획서와 위험성평가 자료, 작업 전 회의 및 안전교육 자료, 갱폼 점검기록, 고정볼트 해체 및 인양 작업의 담당자와 작업순서, 타워크레인 작업일지, 현장 CCTV, 작업자 간 통화와 메신저 내용, 사고 직전 작업지시 내용 등입니다.
이러한 자료를 통해 현장소장이 어떤 위험을 인식할 수 있었는지, 사고 방지를 위하여 실제로 어떤 조치를 취하였는지가 판단됩니다.
형식적인 준수만으로는 형사책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대법원 2022도16668 판결은 건설현장의 안전조치 의무가 단순한 지시나 서류 작성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현장소장이 고정볼트의 해체를 직접 지시하지 않았거나, 누가 볼트를 풀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업무상과실과 산업안전보건법상 책임이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험한 작업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었다면 작업절차를 통제하고, 출입을 제한하며, 안전설비의 상태를 점검하고, 별도의 작업발판을 설치하는 등 실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하여야 합니다.
건설현장의 안전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규정을 형식적으로 준수하였다는 외관이 아닙니다.
해당 현장의 구체적인 위험에 맞는 안전조치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었는지가 형사책임을 가르는 핵심 기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