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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금·대금 미지급과 사기죄: 편취의 범의는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금전 대여, 물품 공급, 공사 도급에서 대금이 지급되지 않으면 채권자는 사기 고소를 떠올리고, 채무자는 민사 문제일 뿐이라고 항변합니다. 사기죄와 채무불이행을 가르는 것은 미지급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행위 당시의 기망과 편취의 범의입니다. 대법원 판결을 중심으로 그 판단 구조를 정리합니다.

사기죄는 변제하지 못한 결과가 아니라 교부받을 당시의 기망을 처벌합니다

형법 제347조의 사기죄는 기망으로 상대방을 착오에 빠뜨려 재물의 교부나 재산상 이익을 얻을 때 성립합니다. 차용이나 외상 거래에서는 변제할 의사 또는 능력이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 전형적인 기망입니다.

대법원이 2003년 1월 선고한 판결은 물품 편취 사안에서, 거래 당시를 기준으로 대금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 없이 변제할 것처럼 속였는지를 판단해야 하며 납품 후 경제사정의 변화로 대금을 일시 변제하지 못하게 된 것만으로는 사기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종전 거래대금의 완제, 납품 후의 분할 지급, 보유 자산, 일시적 자금 압박이라는 사정을 들어 유죄의 원심을 파기한 사안입니다.

편취의 범의는 객관적 사정을 종합하여 인정되고 미필적 고의로 충분합니다

대법원이 2008년 9월 선고한 판결은 피고인이 자백하지 않는 이상 범행 전후의 재력, 환경, 범행의 내용, 거래의 이행과정 등 객관적 사정을 종합하여 범의를 판단할 수밖에 없고, 범의는 미필적 고의로도 족하다고 하였습니다. 같은 판결은 사기죄의 성립 여부를 행위 당시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며, 분양대금 사안이라면 분양계약 체결 당시 또는 분양대금 수령 당시의 범의를 살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법리는 양면으로 작용합니다. 변제 의사가 있었다는 진술만으로 범의가 부정되지 않고, 반대로 변제하지 못했다는 결과만으로 범의가 추정되지도 않습니다. 수회에 걸친 수령이 문제 될 때에는 각 수령 시점별 사정을 구분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속적 거래와 사업 수행 중의 미지급은 신중하게 판단됩니다

대법원이 2016년 6월 선고한 판결은 건설회사 대표가 납품받은 자재대금 일부를 지급하지 못한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피고인의 신용상태를 인식하여 변제 지체나 변제 불능의 위험을 예상하였거나 예상할 수 있었던 경우, 이후 변제하지 못하였다는 사실만으로 변제능력에 관한 기망이나 사기의 고의를 단정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기업 경영자가 파산에 이를 가능성을 인식하였더라도 이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고 계약 이행의 의사가 있었다면 고의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경영상 위험의 인식과 편취의 범의를 구별한 판결입니다. 다만 이는 구체적인 기망행위가 드러나지 않은 사안에 관한 판단이므로, 재무 상태나 수주 현황을 허위로 고지한 경우까지 포괄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변제능력과 별개로 용도에 관한 기망도 사기죄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이 1996년 2월 선고한 판결은 기망이 법률행위의 중요 부분에 관한 것일 필요가 없고 상대방의 재산적 처분행위를 위한 판단의 기초가 되는 사실에 관한 것이면 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용도를 속이고 금원을 차용한 경우 진정한 용도를 고지하였다면 상대방이 대여하지 않았을 관계에 있다면 기망이 인정됩니다.

공사 선급금·기성금에도 같은 구조가 적용됩니다

위 법리에 따르면 선급금이나 기성금을 수령할 당시 공사를 완성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 수령한 금원이 약정한 현장에 투입되었는지가 판단의 중심이 됩니다. 공사 지연이나 중단 자체는 채무불이행의 문제이나, 이행이 불가능한 상태를 숨기고 금원을 수령하였다면 사기죄가 문제 됩니다. 이 부분은 개별 판결의 판시가 아니라 위 법리를 공사 사안에 적용한 설명입니다.

이득액이 5억 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법이 적용됩니다

사기죄의 법정형은 2025년 12월 형법 개정으로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되었습니다(종전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 이득액이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 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이득액 이하의 벌금을 병과할 수 있습니다.

당사자가 준비할 사항

채권자는 형사 고소가 채권 회수 절차가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가압류, 지급명령, 소송 등 민사 절차를 병행하여 검토하여야 합니다. 고소에서는 차용·계약 당시 상대방의 설명과 실제 사정의 차이를 자료로 제시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피고소인은 당시의 변제 의사와 능력을 보여 주는 객관적 자료, 즉 자금 사정, 수주·매출 내역, 수령 금원의 사용처, 일부 변제와 협의 경과를 정리하여야 합니다. 초기 조사 단계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피해 회복에 나서는 것이 정당한 방어권 행사의 출발점입니다.

Q&A

Q. 변제기 이후 연락을 끊은 사정은 사기의 근거가 됩니까?

사후의 태도는 그 자체로 기망행위가 아닙니다. 다만 행위 당시의 범의를 추단하는 간접사실의 하나로 고려될 수 있습니다.

Q. 여러 건의 거래가 있는 경우 이득액은 어떻게 봅니까?

특정경제범죄법의 적용 여부는 이득액에 따라 달라지므로, 어느 거래가 하나의 죄로 평가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는 피해자와 범행 방법 등 구체적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여서 사건별 검토가 필요합니다.

맺음말

사기죄와 채무불이행의 경계는 행위 당시로 돌아가 판단됩니다. 대법원은 결과로부터 범의를 역산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객관적 사정에 의한 미필적 고의의 인정은 열어 두고 있습니다. 어느 입장이든 계약·차용 시점의 자료를 확보하는 일이 가장 먼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