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은 돌봄시설, 복지시설, 문화시설 등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민간단체에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민간위탁 구조에서는 시설 운영과 종사자 채용을 수탁기관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시설 종사자의 불법행위로 이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위탁기관이 “해당 종사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민법상 사용자책임은 반드시 직접적인 근로계약이나 고용관계가 있어야만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2026. 5. 29. 선고 2025다219520 판결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민간단체에 다함께돌봄센터의 운영을 위탁한 사안에서 수탁기관 소속 돌봄교사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에도 민법 제756조의 사용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 판결은 민간위탁을 통하여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위탁기관이 부담하는 관리·감독 책임의 범위를 구체화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2. 사건의 개요
지방자치단체인 갑은 다함께돌봄센터를 설치한 후 비영리민간단체인 을과 위탁계약을 체결하여 센터의 운영을 맡겼습니다.
센터에서 근무하던 을의 피용자인 돌봄교사 병은 수업 중 이용 아동 정을 성추행하였습니다.
이에 피해 아동과 부모들은 가해자인 돌봄교사와 수탁기관뿐만 아니라, 센터를 설치하고 운영을 위탁한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도 민법 제756조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지방자치단체가 돌봄교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와 돌봄교사 사이에 민법상 사용관계가 인정될 수 있는지였습니다.
3. 민법 제756조의 사용관계 판단 기준
민법 제756조 제1항은 타인을 사용하여 어느 사무에 종사하게 한 자가 피용자의 사무집행으로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용자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와 불법행위자 사이에 사용관계가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법원은 종전부터 사용관계가 반드시 근로계약이나 직접 고용관계에 의하여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 왔습니다.
위임, 조합, 도급 등 계약의 형식과 관계없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 지휘·감독 아래 사무를 수행하는 관계라면 민법 제756조의 사용관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또한 지휘·감독 관계는 실제로 사용자가 피용자를 구체적으로 지휘하거나 감독하였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보아 사용자가 피용자의 사무집행을 지휘·감독하여야 할 관계에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따라서 실제로 감독을 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사용관계가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4. 수탁기관의 피용자와 위탁자 사이의 사용관계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법리를 명확히 하였습니다.
위탁자가 위탁계약을 통하여 수탁자와 수탁자의 피용자를 자신의 사무에 종사하게 하였고, 위탁자가 이들을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하여야 할 관계에 있다면 수탁자뿐만 아니라 수탁자의 피용자와 위탁자 사이에서도 민법 제756조의 사용관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즉, 다음과 같은 구조에서도 사용자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탁기관 → 수탁기관 → 수탁기관 소속 종사자
위탁기관과 가해 종사자 사이에 직접적인 고용계약이 없더라도, 해당 종사자가 위탁기관의 사무를 수행하고 있고 위탁기관이 그 업무를 객관적으로 지휘·감독하여야 할 관계에 있다면 사용자책임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이는 계약의 형식보다 업무의 실질과 지휘·감독 관계를 중심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5. 대법원의 구체적인 판단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수탁기관과 소속 돌봄교사의 사무집행을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하여야 할 관계에 있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가. 다함께돌봄센터의 설치·운영 주체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다함께돌봄센터의 설치 및 운영 주체는 지방자치단체입니다.
또한 아동에 대한 돌봄서비스 관련 시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도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수탁기관이 실제 시설 운영을 담당하더라도, 해당 업무는 본질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여야 할 공적 사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 위탁계약상 관리·감독 권한
위탁계약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수탁기관의 운영실적, 사업계획, 예산 및 결산 등을 관리·감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는 관련 서류를 열람하거나 제출을 요구하고, 필요한 경우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는 지방자치단체가 시설 운영을 수탁기관에 전적으로 일임한 것이 아니라, 운영 전반에 관하여 상당한 관리·감독 권한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다. 운영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관여
지방자치단체는 다함께돌봄센터의 운영을 위탁하면서 운영시간, 이용료, 운영인력, 인건비, 사업비, 시설비 및 기자재비 등을 미리 구체적으로 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수탁기관은 완전히 독립적인 지위에서 센터를 운영한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기준과 범위 안에서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라. 위탁을 통한 활동영역의 확장
대법원은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위탁을 통하여 자신의 공적 사무를 수행하고 활동영역을 확장하였다면, 그에 상응하는 지휘·감독도 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결국 지방자치단체는 수탁기관과 그 소속 돌봄교사가 수행하는 사무를 객관적으로 지휘·감독하여야 할 관계에 있었으므로, 돌봄교사의 불법행위에 관하여 사용자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6. 직접 고용 여부보다 중요한 판단 요소
이번 판결에 따르면 위탁기관의 사용자책임 여부는 직접적인 고용관계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야 합니다.
첫째, 해당 업무가 본래 위탁기관의 법령상 또는 제도상 사무인지 여부입니다.
둘째, 위탁기관이 수탁기관의 업무 내용과 운영 기준을 정하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셋째, 위탁기관이 예산, 인력, 시설 운영 등에 관여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넷째, 위탁기관이 수탁기관에 자료 제출, 보고, 시정조치 등을 요구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다섯째, 수탁기관과 그 종사자가 사실상 위탁기관의 사업 목적을 수행하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따라서 위탁계약서에 수탁기관이 독립적으로 운영한다고 규정되어 있거나, 수탁기관이 소속 직원에 대한 책임을 부담한다고 정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피해자에 대한 위탁기관의 사용자책임이 당연히 배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약 당사자 사이의 내부적인 책임 분담과 피해자에 대한 민법상 책임은 구별하여 판단하여야 합니다.
7. 판결의 실무적 의미
이번 판결은 다함께돌봄센터에만 한정되는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이 민간에 위탁하여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 장애인시설, 노인복지시설, 청소년시설, 문화·체육시설, 상담시설 등에서도 동일한 법리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민간위탁 시설의 이용자에게 사고나 인권침해가 발생한 경우 피해자는 직접적인 가해자와 수탁기관뿐만 아니라 위탁기관의 책임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위탁기관이 운영 기준, 인력 배치, 예산, 시설 관리 등에 구체적으로 관여하고 수탁기관에 대한 지도·감독 및 시정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면 사용자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시설 운영을 민간에 위탁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책임까지 모두 수탁기관에 이전된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위탁을 통하여 자신의 사무를 수행하는 이상, 수탁기관의 운영과 종사자의 업무 수행에 대한 실효적인 관리·감독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기적인 지도·점검뿐만 아니라 종사자 선발 및 교육, 이용자 보호 절차, 신고 및 대응 체계, 사고 예방 지침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그 이행 여부를 확인하여야 합니다.
8. 맺음말
대법원 2026. 5. 29. 선고 2025다219520 판결은 민간위탁 관계에서도 위탁기관과 수탁기관 소속 종사자 사이에 민법 제756조의 사용관계가 인정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위탁기관이 수탁기관과 그 종사자를 통하여 자신의 사무를 수행하게 하고, 객관적으로 그 업무를 지휘·감독하여야 할 관계에 있다면 직접적인 근로계약이 없더라도 사용자책임을 부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민간위탁 시설에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단순히 고용계약의 당사자만을 확인할 것이 아니라, 관련 법령상 설치·운영 주체, 위탁계약의 내용, 운영 기준, 예산 및 인력 관리 구조, 지도·감독 권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야 합니다.
위탁기관의 책임 여부는 각 사건의 구체적인 위탁 구조와 실제 운영 형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위탁계약서와 운영규정, 지도·점검 자료, 예산 및 인력 관련 자료를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