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전세계약에서 입주일은 단순한 이사 날짜가 아닙니다.
임차인은 입주일에 맞추어 기존 주거지를 정리하고, 이삿짐센터를 예약하며, 잔금 지급과 전입신고, 확정일자까지 준비합니다. 특히 전세계약에서는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이 보증금 보호와도 연결되므로, 입주일에 실제로 주택을 인도받을 수 있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입주일을 며칠 앞두고 임대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연락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존 임차인이 집을 빼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 경우 임차인은 잔금을 지급해야 하는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지, 이미 지급한 계약금과 위약금을 청구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2. 임대인의 주택 인도의무와 임차인의 잔금 지급의무
임대차계약에서 임차인은 약정한 잔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반대로 임대인은 약정한 입주일에 임차인이 목적물을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주택을 인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임대차계약은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목적물을 인도하여 사용·수익하게 하고, 임차인이 이에 대한 차임 등을 지급하기로 하는 계약입니다. 따라서 임대인의 목적물 인도의무와 임차인의 잔금 지급의무는 계약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주된 채무입니다.
대법원도 임대인의 임대목적물 인도의무와 임차인의 잔금 지급의무가 동시이행 관계에 있음을 전제로 판단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2. 11. 29. 선고 2012다72346 판결 참조).
또한 민법 제536조 제1항은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그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존 임차인이 퇴거하지 않아 실제 입주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임차인이 무조건 잔금을 먼저 지급해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주택을 인도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잔금을 먼저 지급하는 것은 이후 분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3. 기존 임차인 미퇴거는 임대인의 책임 영역입니다
임대인은 종종 “기존 임차인이 나가지 않는 것은 저도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새 임차인과의 관계에서는 달리 보아야 합니다.
임대인은 계약상 정해진 입주일에 임차인에게 주택을 인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기존 임차인과의 퇴거 문제는 원칙적으로 임대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새 임차인이 그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법원도 임대인이 제3자의 점유로 임대목적물을 인도하지 못한 것은 귀책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7. 16. 선고 2020가단5274362 판결 참조).
따라서 기존 임차인이 퇴거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임대인의 인도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4. 입주일 전 계약해제 가능성
계약해제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민법 제544조는 당사자 일방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이행을 최고하고, 그 기간 내에도 이행하지 않을 때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채무자가 미리 이행하지 않을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최고를 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이행지체 상황에서는 상당한 기간을 정해 이행을 요구하는 절차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입주일이 임박한 상황에서 임대인이 기존 임차인 미퇴거 사실을 통보하고, 입주예정일에 실제 인도가 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면,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이행불능 또는 이행거절에 해당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원도 채무자의 이행거절 의사가 명백한 경우에는 채권자가 이행기 전이라도 계약을 해제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본 사례가 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1. 21. 선고 2018가단5219522 판결 참조).
다만 입주일 전 계약해제가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계약서 내용, 임대인의 답변, 입주일까지 남은 기간, 기존 임차인의 퇴거 가능성, 임차인의 잔금 지급 준비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5. KY파트너스 실제 수행 사례
최근 KY파트너스에서 수행한 사건도 이와 유사했습니다.
의뢰인은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임차인이었고, 계약금으로 7,500만 원을 지급한 상태였습니다. 입주일에 맞추어 이사 준비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입주예정일을 불과 4일 앞두고 임대인으로부터 “기존 임차인이 집을 빼지 않겠다고 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시간이 매우 촉박한 상황이었으므로, 우선 임대인에게 문자메시지로 다음과 같은 취지의 확인을 요청하도록 하였습니다.
“입주예정일에 실제 입주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그 근거와 함께 확인해 달라.”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후 계약해제나 위약금 청구를 검토하려면, 임대인이 입주예정일에 목적물을 인도할 수 있는 상태였는지, 아니면 인도가 불가능하거나 이행을 거절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관한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임대인은 입주예정일에 실제 입주가 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답변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KY파트너스는 입주예정일 3일 전, 임대인의 이행불능 내지 이행거절을 이유로 임대차계약을 해제한다는 내용증명우편을 발송했습니다. 아울러 이미 지급한 계약금 7,500만 원의 반환과, 계약금 상당액을 위약금으로 정한 특약에 따른 위약금 7,500만 원을 함께 청구했습니다.
청구금액은 합계 1억 5,000만 원이었습니다.
이후 상대방은 가용한 현금을 최대한 마련하여 일부를 우선 지급하고,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공정증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지급을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의뢰인은 계약금 반환과 위약금을 합한 1억 5,000만 원 상당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입주예정일에 실제 입주가 가능한지 명확히 확인했습니다.
둘째, 임대인이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한 사실을 증거로 남겼습니다.
셋째, 계약서상 위약금 특약을 확인했습니다.
넷째, 이행불능 또는 이행거절을 근거로 계약해제 의사를 명확히 표시했습니다.
다섯째, 계약금 반환뿐만 아니라 위약금까지 함께 청구했습니다.
물론 모든 사건에서 같은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임대인이 실제로 입주일에 주택을 인도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계약서에 위약금 특약이 없었다면 청구 범위도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체적인 계약서와 당시 주고받은 메시지, 통화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6. 계약금 반환과 위약금 청구
임대인의 채무불이행으로 임대차계약이 해제되는 경우, 임차인은 이미 지급한 계약금 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계약서에 위약금 특약이 있는 경우에는 계약금 상당액의 위약금 청구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계약금이 7,500만 원이고, 계약서에 계약금 상당액을 위약금으로 한다는 특약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구조가 됩니다.
계약금 반환: 7,500만 원
위약금 청구: 7,500만 원
합계: 1억 5,000만 원
다만 위약금 청구가 항상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임대인의 귀책사유가 있는지, 계약해제가 적법한지, 위약금 특약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위약금 조항의 문구가 어떠한지, 위약금이 과도하다고 다투어질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민법 제398조 제4항은 위약금 약정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약금 조항이 있는 경우 그 법적 성격도 확인해야 합니다.
7. 임시숙소비, 이사비, 보관비 청구 가능성
입주일에 집을 인도받지 못하면 임시숙소비, 이삿짐 보관비, 이사 일정 변경 비용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계약서에 위약금 특약이 있는 경우에는 이러한 비용을 위약금과 별도로 청구할 수 있는지 신중히 검토해야 합니다.
위약금 약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됩니다. 손해배상액의 예정이 있는 경우에는 실제 손해가 예정액을 초과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초과 손해를 따로 청구하기 어렵습니다(대법원 1993. 4. 23. 선고 92다41719 판결 참조).
따라서 계약서에 “계약금 상당액을 위약금으로 한다”는 특약이 있다면, 임시숙소비나 이사비 등은 위약금에 포함되는 손해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위약금 특약이 없는 경우에는 민법 제390조에 따라 실제 발생한 손해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손해 발생 사실, 손해액, 임대인의 채무불이행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합니다.
따라서 다음 자료를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임시숙소 계약서 또는 결제내역
이삿짐 보관비 영수증
이사 일정 변경으로 인한 추가 비용 자료
기존 주거지 퇴거 일정 관련 자료
잔금 지급 준비 자료
임대인과 주고받은 문자, 카카오톡, 이메일, 녹취
입주하지 못한 현장 상황 자료
8. 잔금 지급 전 확인해야 할 사항
입주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잔금을 먼저 지급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잔금 지급 전에는 최소한 다음 사항을 확인해야 합니다.
기존 임차인이 실제로 퇴거했는지
짐이 모두 반출되었는지
열쇠 또는 비밀번호를 인계받을 수 있는지
임차인이 실제로 주택을 점유할 수 있는지
전입신고가 가능한지
확정일자 및 대항력 확보에 문제가 없는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1항은 임차인이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마친 때에는 그 다음 날부터 제3자에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택의 인도는 단순한 입주 편의 문제가 아니라, 임차인의 보증금 보호와도 직접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9. 기존 주택 보증금 반환 문제
새 집에 입주하지 못하는 문제는 기존 주택의 보증금 반환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기존 임대차가 종료되었는데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사를 나가야 한다면, 임차권등기명령을 검토해야 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 제1항은 임대차가 끝난 후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은 경우 임차인이 임차주택 소재지를 관할하는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임차권등기명령의 집행에 따른 임차권등기를 마치면 이미 취득한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은 유지됩니다. 또한 임차권등기 이후에는 대항요건을 상실하더라도 이미 취득한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을 잃지 않습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 제5항).
따라서 새 집의 입주 지연 문제와 기존 집의 보증금 반환 문제는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10. 실무상 대응 방법
입주예정일을 앞두고 기존 임차인이 퇴거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다면 다음 순서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임대인에게 입주예정일에 실제 입주가 가능한지 확인합니다.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 근거를 요구합니다.
답변은 문자, 카카오톡, 이메일 등 증거가 남는 방식으로 받습니다.
잔금 지급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자료를 확보합니다.
계약서상 위약금 특약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실제 인도 가능 여부가 확인되기 전에는 잔금 지급을 신중히 검토합니다.
인도가 불가능하거나 이행거절로 볼 수 있는 사정이 있다면 계약해제를 검토합니다.
계약금 반환, 위약금 청구 가능성을 함께 검토합니다.
위약금 특약이 없는 경우에는 임시숙소비, 이사비, 보관비 등 실손해 자료를 확보합니다.
기존 집 보증금 반환 문제가 있다면 임차권등기명령 필요성도 함께 검토합니다.
Q&A
Q1. 기존 임차인이 퇴거하지 않았는데도 잔금을 지급해야 하나요?
원칙적으로 임대인의 주택 인도의무와 임차인의 잔금 지급의무는 동시이행 관계에 있습니다. 임대인이 입주일에 주택을 인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임차인도 잔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지 검토할 수 있습니다.
Q2. 입주일 전에도 계약해제가 가능한가요?
사안에 따라 가능합니다. 다만 입주일 전 계약해제는 신중해야 합니다. 임대인이 실제로 입주일에 주택을 인도할 수 없는 상태인지, 이행거절로 볼 수 있는지,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Q3. 계약금 반환 외에 위약금도 청구할 수 있나요?
계약서에 위약금 특약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계약금 상당액을 위약금으로 정한 특약이 있고, 임대인의 채무불이행으로 계약이 적법하게 해제되는 경우라면 계약금 반환과 별도로 위약금 청구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Q4. 임대인이 “기존 임차인 문제라 어쩔 수 없다”고 하면 책임이 없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존 임차인과의 퇴거 문제는 원칙적으로 임대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새 임차인과의 관계에서 임대인은 약정한 입주일에 주택을 인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Q5. 임시숙소비나 이사비도 청구할 수 있나요?
계약서에 위약금 특약이 있는 경우에는 별도 청구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위약금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위약금 특약이 없는 경우에는 실제 발생한 손해를 입증하여 임시숙소비, 이사비, 보관비 등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Q6. 전화로만 항의해도 충분한가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화통화는 나중에 내용이 다투어질 수 있으므로, 중요한 내용은 문자, 카카오톡, 이메일, 내용증명 등 증거가 남는 방식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11. 마치며
전세 입주일에 기존 임차인이 퇴거하지 않는 문제는 단순한 일정 지연이 아닙니다.
잔금 지급, 계약해제, 계약금 반환, 위약금, 손해배상, 임시 거처, 기존 주택 보증금 반환 문제까지 한꺼번에 연결될 수 있습니다.
특히 입주일이 임박한 상황에서 임대인이 기존 임차인 미퇴거를 통보하였다면, 먼저 입주 가능 여부를 명확히 확인해야 합니다. 임대인이 입주 가능 여부를 분명히 답변하지 못한다면 계약서상 위약금 특약과 계약해제 가능성을 신속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사건이 같은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입주일에 집을 인도받지 못했거나, 입주 직전 기존 임차인이 퇴거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다면 계약서, 문자, 카카오톡, 잔금 준비 자료, 이사 관련 비용 자료를 정리한 뒤 법률적인 검토를 받아보시기 바랍니다.